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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시 문학14

식사법 -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 것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 (문학동네, 2001)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매일 나의 영혼에 밥을 먹을 때 이런 식사법으로 한다면 영혼이 허기지거나 배탈이 덜나지 않을까.. 2023. 6. 14.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창비 p11 나무들 우리가 자신의 철없는 생각을 두려워하는 저녁때면 나무는 속삭인다. 나무를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에도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고 나면, 우리 사유의 짧음과 빠름과 아이 같은 서두름은 비할 바 없는 기쁨이 된다.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는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 말고 다른 무엇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자연과 예술을 평생 사랑하며 그들에게서 배웠던 헤세의 글이다. 나무안에 깃들어 있는 생명과 성스러움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 2023. 6. 2.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 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하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실수하지 않으려고,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애쓰고 있지 않은가? 내 안에는 나를.. 2023. 5. 18.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 아빠와 단둘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하지만 발표 시간이 자꾸만 떠올라요 그 많은 눈이 내 입술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걸 지켜보았어요 그 많은 입이 키득거리며 나를 비웃었어요 배 속에 폭풍이 일어난 것 같아요 두 눈에 빗물이 가득 차올라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쳐요 아빠는 말했어요 내가 강물처럼 말한다고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그러면 울음을 삼킬 수 있거든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나를 둘러싼 낱말들을 말하기 어려울 때면 그 당당한 강물을 생각해요 한 편의 시 같은 글과 그림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한다. 아이의 모습.. 2023.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