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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시 문학14

벌 - 나태주 벌, 나태주 글씨를 쓰거나 젓가락질할 때마다 오른쪽 엄지손가락 관절 관절이 아프다 성가시고 괴롭다 때로는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아프다 그러게 내가 뭐라 했더냐 그 손가락과 손목 적당히 써먹으라 하지 않았더냐 글씨를 너무 많이 쓰고 컴퓨터 타자기 너무 오래 두드리고 호미질도 요즘엔 너무 많이 한 게야 육체가 나에게 벌을 내린다 얘야 너에겐 몸이란 것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아프고도 성가신 일이지만 한편으론 고마운 일이다 몸의 어딘가가 아팠을 때 내 몸을 자각한다. 거기서 애쓰고 있는 내 몸이 있었다는 것을. 관심을 주지 않아도 이제 견딜만큼 견뎠으니 더 이상 혹사시키지 말고 잘 돌봐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몸의 통증도 잘 들어보면 심각한 손상이나 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고마운 존재다. 2023. 5. 10.
아버지의 꼬리 - 안상학 아버지의 꼬리, 안상학 딸이 이럴 때마다 저럴 때마다 아빠가 어떻게든 해볼게 딸에게 장담하다 어쩐지 자주 듣던 소리다 싶어 가슴 한 쪽이 싸해진다 먹고 죽을 돈도 없었을 내 아배 아들이 이럴 때마다 저럴 때마다 아부지가 어떻게든 해볼게 장담하던 그 가슴 한쪽은 어땠을까 아빠가 어떻게든 해볼게 걱정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딸에게 장담을 하면서도 마음속엔 세상에서 수시로 꼬리를 내리는 내가 있다 장담하던 내 아배도 마음속으론 세상에서 무수히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아배의 꼬리를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배의 꼬리는 떠오르지 않는데 딸은 내 꼬리를 눈치챈 것만 같아서 노심초사하며 오늘도 장담을 하고 돌아서서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꿈틀거리는 꼬리를 누른다 (실천문학사, 2014) 2023. 5. 8.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 이해인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이해인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히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 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도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 불러 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 2023. 5. 8.
작은 당나귀 - 김예인 작은 당나귀, 김예인 글. 그림, 느림보. 작은 당나귀는 날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실수로 불을 낼 뻔하기도 합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떠나는 꿈을 꾸며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떠돌이 시인이 나타나 “도시 끝에 울창한 숲이 있다네. 소리 없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한 숲. 그곳에 평화로운 성이 있다네!” 작은 당나귀는 신비한 숲을 찾아 떠났습니다. 골동품 상인도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당장 그 숲으로 가서 보물을 찾아!” 신비한 숲에 다녀온 당나귀는 오늘도 도시에서 일을 하지만 마음은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에 가득 찬 상인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숲을 헤맸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작은 당나귀를 보며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신비한 숲.. 2023. 4. 25.